한글이 텅 빈 도시의 회색 보도블록 위를 퉁퉁 뛰며 달린다. 눈앞에 펼쳐진 낡은 간판들은 모두 하얀 공간만 남긴 채 바람에 윙윙거린다.
한글이는 상점 주인이 무언가를 외치려 입을 벌리자, 소리가 공중으로 흩어지는 것을 본다. 주인은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손가락을 비비적이며 허공을 가리킨다.
한글이는 길모퉁이에서 빛나는 노란빛을 발견한다. 그것은 사라진 글자들 중 마지막 남은 '가' 자였다. 한글이는 그 글자를 조심스럽게 주머니에 쑤셔 넣는다.
한글이가 도시에 다시 나타나자 사람들이 서로를 바라보며 의문을 품는다. 한글이는 숨을 죽이고 주머니에서 빛나는 '가' 자를 꺼내 공중에 띄운다.
'가' 자가 부서지며 수천 개의 작은 글자들이 도시 전체로 퍼져 나간다. 사람들은 글자를 보고 웃으며 서로의 이름을 부르고, 고요하던 거리에 활기가 돌아온다.
한글이는 거리의 한복판에 서서 글자들이 땅에 떨어지는 소리를 듣는다. 빽빽하게 쌓인 글자들은 이제 더 이상 하얀 공간이 아니다.
상점 주인이 다시 입을 벌리자, 이번에는 뚜렷한 목소리가 나온다. 그는 한글이를 향해 손을 내밀며 감사의 인사를 건넨다.
도시의 이름이 다시 들리기 시작한다. 한글이는 미소 지으며 하늘 높이 점프하여 구름 사이로 사라진다. 고요했던 도시는 이제 노래하는 곳이다.